칠불사유래

C바야흐로 봄이 오고 있다. 겨우내 움츠리며 잠자고 있던 산천초목이 몸을 비틀며 기지개를 켜고, 파릇한 새싹들은 서로 시샘하는 양 산들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천지조화로 빚어진 삼라만상의 기묘한 모습은 제각각 자기 자리를 지키며 의젓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사건점산(비봉산) 상봉에는 솟대처럼 우뚝 솟은 촛대봉(일명, 문필봉)과 식기봉이 때때로 운무에 몸을 감추었다가 드러내었다 하며 숨을 고르고 있다. 그 남쪽 느슨한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는 풍류가 넘치는 가락처럼 들리는데 그 장단에 맞추어 한가로이 피리 부는 마을, 한적동(閑笛洞)이 자리 잡고 있다. 한적동에는 예로부터 전해오는 전설이 있다. 달 밝은 밤이나 아니면 때때로 피리 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시원하고 신비스러운 영천(靈泉)이 있다. 아주 오랜 옛날 옛적에는 그 영천에 하늘의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도 하고 노래와 춤을 추며 즐기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니 얼마나 아름답고 부러운 전설인가.

6. 25사변이 치열할 때 인근에 있는 삼도봉에서는 포성이 진동하고 부항면은 난데없이 불길에 휩싸였다 한다. 천지를 뒤흔드는 포성과 치솟는 불길을 피해 주민들은 남부여대하여 피난을 떠나기에 급급했다. 그중에 미처 피난을 못 간 사람들은 급한 김에 한적동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삼도봉 근처와 부항면 일대가 쑥대밭이 될 정도로 요란한데도 가까운 한적동 계곡에서 피리 소리가 들리면 어찌 된 일인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그뿐 아니라 한적동에는 한 명의 적군(인민군)도 들어오지 않았다 한다. 그것은 한적동이 동구 밖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라 중엽, 신라와 백제의 접경에 가까운 사반점산 아래 한적동 앞을 흐르는 냇가에 송라로 엮어 만든 삿갓을 벗어 놓고 한 스님이 쉬고 있었다. 때마침 뒤 계곡에서 은은하고 청아한 피리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스님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피리 소리가 들려오는 계곡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계곡을 오르던 스님은 피리 소리가 나던 곳이 어디인가 걸음을 멈추고 살펴보았다. 사람의 흔적은 하나도 없고, 산세가 아주 빼어나며 풍광이 수려하였다. 몇 걸음 더 올라가니 우거진 반송 밑에 옹달샘이 있고, 그 밑으로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물빛이 하도 맑아 무심결에 한 모음 더 마셨더니 갑자기 눈이 밝아지고 머리가 상쾌해지는 것이었다. 스님은 속으로 감탄하면서 다시 사방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신선이 봉황을 타고 내려와 엎드린 형국이 역력했다. 이만하면 부처님을 모실만한 자리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 짐작하고 몇 번을 다시 살펴보았다. 얼마 후 다시 와서 이곳에 터를 잡아 절을 짓기 시작했다. 절이 거의 완성될 무렵 스님은 한적동 앞의 활인산(活人山)에 올라가 주위를 둘러보니 앞 계곡이 마치 활시위를 잡아당기는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서 절 이름을 활궁(弓), 골곡(谷)을 넣어서 궁곡사(弓谷寺)라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궁곡사라는 사명(寺名)은 이곳밖에 없다. 궁곡사의 창건주는 도선 922년(태조 5년) 스님으로 알려졌으나 그 이상의 기록은 어디에도 없어 메우 아쉽다. 다만 궁곡사로 추정되는 절터에서 신라시대의 유물로 추측되는 깨진 기왓장과 불타다 남은 녹슨 문고리, 도자기 파편 등이 출토되었다. 유서 깊은 이 자리에 1994년부터 성운(惺雲) 스님이 궁곡사라는 이름 대신 칠불사(七佛寺) 라는 이름으로 중창불사를 진행 중이어서 경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궁곡사(弓谷寺)라는 사명(寺名)

유서 깊은 이 자리에 1994년부터 성운(惺雲) 스님이 궁곡사라는 이름 대신 칠불사(七佛寺) 라는 이름으로 중창불사를 진행 중이어서 경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칠불사[七佛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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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사는 소백산맥이 흐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소백산맥은 소백산을 시작으로 속리산, 황악산, 민주지산, 덕유산으로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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